기상예보가 틀렸는지 맞았는지 모르지만
새해를 맞아 모처럼 눈 다운 눈을 겨울답게 보네요.
지구 온난화가 언제 시작 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살던 남쪽은 어릴때 기억으로 눈이 참 많이 왔었습니다.,
날이 따뜻해서 금방 녹기는 했지만, 가끔은 도로변 전나무
같은 가로수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자주 왔어요.
하기야 요즘도 일기 예보 보면 남쪽 지방은 눈이 많이 오지요.
서해안을 끼고 있어선지 함박눈 , 싸락눈 많이 왔지요.
학교 오갈때 눈이 내리면 까만 교복 앞자락과 모자에 눈이 쌓여
마치 하얀 교복처럼 되고, 모자 챙을 따라 눈 녹은 물이 뚝 뚝 떨어지고,
요즘 같지 않은 헝겁으로 만든 까만 운동화는 방수가 전혀되지 않으니
눈물이 스며들어 신고 나갔다 오면 양말까지 다 젖은데다 발이 까맣게
까마귀발처럼 물들곤 했지요. 아무리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아
겨울내내 맨발을 내놓기 부끄러웠지요.
집에 돌아 오면 연탄 아궁이 위 커다란 솥에 항상 뜨거운 물이 있어
바가지로 퍼서 발을 씻고 따끈한 아랫목에 발을 묻고, 웃목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만 흑백TV를 보며, 눈이 실실 감기던 겨울 저녁,
이불속에 묻어든 고구마도 먹고, 동지무렵이면 한솥 가득 끓여 장독대에 얼도록
보관했던 얼음이 서그럭 거리는 동지죽에 홍갓을 넣어 보라빛 색이
예쁜 동치미를 곁들어 한사발 떠먹으면 세상 부러울게 없었는데...
저녁 먹고 공부방으로 건너와 책상에 앉으면 바로옆 창밖으로 이웃집 지붕에 쌓인
하얀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책상위에 놓아둔 조그만 라디오에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사연들과 신청곡을 들려 주는 '한밤의 음악 편지' 같은
라디오 프로에 귀를 기울이면서 공부도 하고, 그때는 눈이 오면 참 좋아했지요.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이 아니라서 차가 안다니면 걸어 다니고,
길이 미끄러운 빙판길에는 동네 누군가가 연탄재를 뿌려서 그쪽을 밟고 다니게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달밝은 밤에는 골목 골목 찹살떡 장수가 다니면서
"찹살떡 사려'을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지요.
한번 사먹어 보고 싶었지만 위생상의 문제로 절대로 못먹게 하신 어머님 덕분에
생각으로만 그쳤습니다.
밤늦게 퇴근 하시는 아버님은 공부하는 우리를 위해서 살짝 언듯한 달콤한 홍시를
사오셔서 방문 열고 건네 주시곤 했는데. 지금도 홍시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나이들면 옛날일만 생각난다는데 내가 그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분명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불편하고, 사는게 팍팍하고, 뭐든지 부족한 시대였슴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만 기억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