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오고 살아 가기

이야기 XI

까치산하나 2009. 4. 7. 20:47

워낭소리.....

많은이의 심금을 울리고,  

개발시대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5060세대를 지나

7080세대를 아우르는, 마음속 깊이 침잠해 있던 

추억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수작이지요. 

어깨처지고 꾸정한 허리하며, 걸음 마저 불안정한

할아버지를 보면서  지난 세대를 걸머진 아버지의

무거운 짐을 보았습니다.

어깨 처짐 보이신 아버님 뒷모습을 보며,

보기 싫다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시라고 말씀 드리면

평생 책상과 교단을 오가신 세월의 흔적이라시며

웃음으로 너희들도 내 나이 되어 바라  말씀하시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내 나이도 그 나이에 머지 않았지만.

다행히 우리 세대는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아 배고픔을

모르고 살아선지 아직 허리가 굽어지지는 않았네요.

 

오늘 이야기는 아버님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한

등산이야깁니다.  

아버님은 다섯  자식들이 장성해서 품을 떠나시자 친구분들과

등산을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때는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 숙소에서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일만 할때였기에 시간 내기도 어려워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다가

모처럼 2박 3일 휴가를 얻어 고향집으로 갔지요.

늦은 가을의 하늘은 푸르고 산은 아름다운 계절이어서

아버님의 유일한 취미이신 등산을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대학 진학전까지 주말이면 산이 좋아 산에 가곤 했지만

아버님과는 첨으로 같이 산행 하게 되었지요.

산에 갈 준비를하시고 가볍지 않은 배낭을 아버님이 메고

가시겠다는 겁니다, 나도 그때는 건장한 20대후반 청년인데..

아마도 아직도 어린애로 생각 하시는듯.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고 쉬려고 나왔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게하고

싶지 않으셨나 봅니다. 어머님까지 가세 하셔서 할 수 없이

전 맨몸으로 따라 나섰습니다.

엄하신 아버님덕에 좋은 기억도 있고, 기억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대학 들어가면서 부터 떨어져 살기 시작했기에 그때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해하고 남을 나이였지요.

배낭메고 앞장 서신 아버님 어깨는 여전히 구부정 하셨지만  발걸음만은

힘차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과 같이 가는 등산에 기분이

매우 좋으셨던거 같습니다. 난 사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선건데..

역시 부모님 사랑은 내리 사랑인가 봅니다.

나이 들어야 깨닫게 되니....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합니다.

힘든 고비마다 손 잡아 주시고, 과일 깎아 주시고, 힘들어 할까바

쉬엄 쉬엄 가주시고, 가을 소슬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던 낙엽이

맑고 깨끗한 계곡물을  따라 흐르는 곳 바위에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같이 오니 참 좋다고 하시던 그때....

시간이 되면 다시 같이 다니시자던 약속은 안타깝게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버님 건강이 허락하실때는 내가 시간 내기 어려웠고,

막상 내가 여유가 생기니 아버님이 산에 가실 형편이 안되었고.

그게 첨이자 마지막 산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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