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12월 14일 새벽,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목이 쉬어 눈을 떴다.
아침 6시쯤에는 열이 났고 호흡이 힘들어졌다.
67세였던 환자는 열을 내려야 한다며 당시 고열 치료의 상식이었던 방혈(피를 뽑는 것)을 고집했다.
마운트 버넌 농장에 상주하던 방혈치료사가 먼저 18온스(약 0.5ℓ)의 혈액을 환자의 혈관을 째고 방출시켰다.
곧 세계 최고의 명문인 영국의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졸업한 크레이크와 브라운이라는 두 노인의사가 불려왔다.
그들은 환자의 피를 두 차례 더 뽑았다.
오후에는 필라델피아 의과대학에서 배운 엘리샤 딕이란 젊은 의사가 와서 호흡을 확보하기 위해 기관지절개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였지만, 선배 의사들이 이 위험한 치료법을 거절하였다. 대신 그들은 경험적으로 안전한 방혈법을 네 번째로 시행했다. 방출시킨 환자의 혈액 총량은 이제 약 2.5ℓ에 달했다. 호흡곤란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윽고 밤 10시가 좀 넘은 시각 환자는 사망했다. 6피트 3인치(약 1m90)의 장신이었던 초대 대통령의 시체는 저택의 테이블 위에 모셔졌다. 소식을 듣고 유족들이 농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음날 정오가 지난 시각, 생전에 고인과 가까이 지냈던 윌리엄 손톤 의사가 워싱턴 부인의 손녀 토머스 부인과 함께 나타났다.
영국령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나 잉글랜드에서 자란 손톤은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을 지은 건축가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거쳐 애버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죽은 대통령을 살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의 반대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치료계획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자는 피가 부족했고 공기를 원하다가 사망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선 찬물로 시체를 녹인 다음, 담요에 싸고 점차 마찰을 가해 온기를 되돌리고, 기관을 절개해서 인공호흡을 시키며, 혈관을 통해 양(羊)의 피를 수혈한다면 살릴 수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피를 뽑기만 하던 시대에 의학계의 금기였던 수혈을 생각했고, 죽은 자의 회생치료라는 불가능에 도전하려했던 손톤 의사의 접근방법은,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가 있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후일 이 죽음은 방혈치료의 폐해를 보여주는 유명한 예로 널리 알려졌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의사들이 몇 명이나 모여서 감기(인후염 또는 디프테리아)에 걸린 노인을 치료한답시고 피를 2.5ℓ나 뽑았다는 것이다. 그 후 200여년 동안 미국의 초대 대통령의 직접 사인이 실혈(失血)인지 질식인지는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의사학교실교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4051201011930083004
치료목적으로 혈액을 급속히 채혈하는 과정. 이것은 고대 로마나 중국 등에서 약 2000년 전부터 시행되어왔고,
중세유럽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 치료법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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