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오고 살아 가기

이야기 XV

까치산하나 2011. 9. 13. 15:13

오늘은 군대이야기.

아들이 군대에 가서 기억이 새롭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입소한 날이 또렷이 기억에 남습니다.

입소하기 싫어 2시까지 입소하라는 통지를 받았지만

대구 군의학교 앞에서 뭉기적 거리다 5시 넘어 들어 갔더니

훈련병 번호가 1200대. 맨 마지막 중대였습니다.

말이 좋아 군의장교 후보생이지 나이 30넘어 군대에 들어가니

좀 처량했습니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기혼자가 많아 다들 가족들도 오고,

이별하느라 정신 없는데

난 미혼인데다 다 늦게 군대에 가니 부모님 오신다는것도 마다하고

나 혼자 달랑 들어가게 되어 기분이 묘하데요.

그래도 같은 학교 동문이라고 우리 학교 병원에서 위탁 교육 받았던

간호사관학교 교수요원 김모, 남모 대위님께서 우리 학교 출신만

따로 면회 오셔서 간식을 챙겨 주시데요.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때는 군대밥 정말 먹기 힘들었어요.

군의 학교는 전국에서 모인 의사들을 군의관으로 교육 시키는 곳입니다.

의대 마치고 바로 온 사람, 인턴만 마치고 온사람,

저 같이 전문의 과정 마치고 온 사람등,

인적 구성이 나이차 만큼이나 참 다양했지요.

내가 속한 생활관(내무반)에는 대개 의대 갓 마친 애들과 전문의 출신 두명

있었는데. 우린 전문의 과정을 거치면서 쓴맛 단맛 다 봤기에

교관들 명령에 고분 고분 하고 청소도 잘했는데,

젊은애들(?)은 정말 말 안들었습니다.

덕분에 혼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3일 정도는 군대밥 정말 못 먹겠더니 날이 갈수록 없어서 못 먹게 되고,

건빵 하나에 자식 가진 30 넘은 아빠들이 치사해지고....

하옇든 당시에는 힘들고 지겨웠지만 지나놓고 보면 재미 있었습니다.

그때 부식비로 사서 먹었던 볶음 쇠고기 고추장과 깻잎 통조림.

짠밥에 비벼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 있을까요? 

난 8주 훈련 마치면 현역 대신에 오지에 배치되는 공보의 요원이어서

다양한 군생활은 못했지만 훈련소에서의 갈등과 고민은 시간이 가면서

저절로 용해되고 나이차와 경력을 떠나서 수료 무렵에는 동기들이

모두 한몸 같이  챙겨주고 위하던, 그리고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되었던

두달이었던 같습니다.  군대는 계급사회여서 

우리는 대위로 임관하기에 못되게 굴었던 중위였던 교관들을 임관하면

혼내 줄려고 별렀지만 수료식하면서 다 잊어 먹게 되고 웃으면서 헤어지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춥던 영천 3사관학교 기억납니다.

수료식 끝나고 작업복 한벌 받고 군문을 나서던 순간의 해방감. 

세상이 달라 보이던 그때.

 

'살아 오고 살아 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골부대  (0) 2011.10.03
면회 외박  (0) 2011.09.19
사무실  (0) 2011.09.01
면회  (0) 2011.08.18
올림픽홀 공연.  (0) 2011.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