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오고 살아 가기

이야기IX

까치산하나 2008. 12. 23. 11:12

 

저는 녹차도 좋아하지만

향이 좋은 쟈스민티를 더 좋아합니다.

티백에 들어 있는것을 우려 내어 먹는 침출차보다는

쟈스민꽃과 잎을 건조시켜 다듬어 만든 차를 

진한 향이 우러 나도록 차주전자에 넣고 

책상위에 두고는 향과 함께 수시로 마시곤 하지요.

약간 쌉살하면서도 향이 좋아 단골 중국집에 가서

조금씩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북경에 갔을때는 일부러 현지 백화점에 들러

커다란 봉지에 담긴 현지인들용 자스민티를 사와서

냉동실에 보관하여 두고 마셨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쟈스민티를 선물 받은 이야깁니다.

 

그 환자분은 저와 비슷한 연배의 여자분입니다.

뇌수막에 양성 종양이 생겨 많이 고생하셨지요.

제 분야는 아니었지만 의학적인 자문도 해드리고

가끔은 필요한 약도 구해드리곤 했습니다.

뇌수막에 생기는 양성 종양은 악성이 아니어서 서서히 자라므로

초기에는 두통외에는 별다른증상이 없습니다.

서서히 자라긴 하지만 크기가 커지면서 신경학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요즘에는  CT나 MRI 검사를 해서   

일찍 발견하기만 하면 쉽게 치료 할 수 있는 병인데,

이 분은 발견이 늦어 치료과정이 복잡하고 오랜시간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진단과 치료가 늦은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입니다.

우리나라가 수출 주도의 성장 가도를 달릴때이니 70년대 초반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분 이야기들으면서 참 미안했습니다.

저는 부모 잘 만나 따뜻한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공부만 하면 되는

팔자 좋은  학생이었고, 이 분은 먹고 살기 힘든 시골에서

상경한 근로 여성으로 힘든 환경을 극복하기위해 온 몸으로

살아 온 분이셨으니까요.

20대 초반에 같은 공장에서 일하시던 분을 만나  결혼하시고,

다니던 공장이 사양 사업이어서 문을 닫게 되자

남편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가자 마자 우리나라 여성들의 질곡 같은 고된 시집살이와

베이비붐 세대의 여파로 주렁 주렁 매달린 시동생들.

그리고 몸져 누우신 시아버지.. ..

 

그 과정이야 어찌 눈물없이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말대신에

뇌수막에 생긴 양성 종양이 수술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커져서

병원에 전원 되어 오신거지요.

힘든 치료 과정도, 불가능 할거 같았던 수술도 무사히 마치고,

아직도 재발 가능성이 있지만, 정기적인 검진만 할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낙이 찾아 왔습니다.

열심히 살아오시고,  정직하게 일하시고, 뭐든지 잘하시는 분.

돈이 생기는대로  농지를 구입하여 지금은 언론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성공하신 분으로 4만평이 넘는 농지와 2000평 대지에 지은 그림 같은 집.

늦게나마 시인으로 등단하시고, 그 지역 유지로서 사회적인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고 합니다.

 

병원에 오시면 꼭 제 방에 들리시곤 했는데,

쟈스민티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집에서 직접 만든

쟈스민티을 선물해주셨습니다. 향이 강하고 맛이 좋아

냉동실에 잘 보관하여 아껴 마시고 있습니다.

 

 

  

 

 

    

'살아 오고 살아 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  (0) 2009.04.02
이야기 X  (0) 2009.02.12
독감 예방접종  (0) 2008.09.29
이야기 VIII  (0) 2008.09.09
이야기VII  (0) 2008.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