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
아버지의 고향
돌아가신 아버님은 어릴때 자식들을 절대 고향집에 데려 가시지 않았습니다.
고향마을 마을 근처 선산에는 명절 때마다 우리를 데리고 성묘는 다니셨지만,
가까이 가신 기억이 없습니다.
일제가 최대로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태어 나신 아버님은 단편적인 말씀을 종합해볼때
3000석 부자 지주집 셋째 아들로 태어 나셨고, 일찍 도시로 유학하셔서 지금의 초등학교때부터 하숙을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일제말 중학 졸업 무렵에는 요카렌이라는 소년항공병 지원을 강요받으실 정도로 강건하셨다합니다.
그 시절 지주들처럼 많던 재산은 일제말, 광복, 6.25 전쟁과 토지개혁을 거치면서 다 없어지고 선산만 남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구입하셨던 여러 군데 임야도 욕심많은 종손이 야금야금 다 팔아 먹고 말 그대로 쫄딱 망한거지요.
어머님의 기억에 따르면 아버님과 결혼 하실 무렵만해도 고대 광실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사셨고, 가을이면 곡식을 가득 실은
납품하는 소작인들의 우마차가 동구밖에 까지 줄을섯었다고 하셨는데..........
내가 30 넘어 결혼하고 아이들 데리고 추석 무렵 성묘겸 귀향했을때, 이때는 대학에서 이미 정년퇴직하시고, 우리 종씨 집안
대소사에 관여 하시면서 집안 전각도 재건하시고, 관리하시는 직책을 맡아 큰 어른 역할을 하시던 아버님께서 예전처럼 성묘끝나
고 집으로 차를 돌리던 날 만류하시더니 고향마을을 가보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선산에서 멀지 않은 지금은 집터만 남은 곳을 지나치면서 여기다 하고 가르켜 주셨고,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적지 않은 전답이
저수지가 되어 버린 곳도 보여 주시고, 아버님의 노력이시고 집안의 자랑인 보수하고 개축한 전각도 방문해보고,
우리 집안의 뿌리를 확인한 날이었습니다.
내가 본 옛날 아버님이 낳고 성장하신 집터는 참 좋았습니다.
뒤쪽에 학이 살았다던 숲이 우거진 작으마한 동산에 앞쪽으로는 아버님이 물려 받은 땅이 수몰 되어 버린 저수지 포함
드넓은 평야... 무화과, 감나무가 지천인 풍요로운 마을전경,,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아버님께 제가 이곳을 다시 구입하여 집을 다시 짓자고 하니 이외로 무척 화를 내셨습니다.
망해 버린 집구석에 뭐하러 다시 들어오냐고......
여담으로 아버님 고향집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구입하여 이전한 다른 부잣집도 쫄딱 망했답니다.
아버님도 이곳 다녀오고 2년 후 별세 하셨고....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숲을 덮을 정도로 하얗게 날아 오던 학이 어느날 안 날아 오고,
집안의 섬들이 뒤주안에 업이라던 구렁이가 죽어 발견된 후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던데 이게 전조였을까요?
정말 집터가 운이 다 한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