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산하나 2009. 2. 12. 11:19

존엄사?  Euthanasia?

 

종합 병원에는 언제, 어느곳에서  생과사를 오가는 환자를 만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병원은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고 돌아가지요.

그리고 의사뿐 아니라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은 상시 교대 근무를 하며 병원을 지킵니다.

모든 인력이 다 중요하지만 병원일의 핵심은 아무래도 의사가 되겠지요.

의사도 돌아가면서 24시간 근무합니다.

전공의는 말할것도 없고 Staff이라고 해도 응급콜 당직을 하게됩니다.

당직날은 집에는 있지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콜이 오면 즉시 응할 수 있도록

대기 하는것이지요.

이런 날 받는 콜은 대개는 중환입니다.

하시라도 불려 나가서 밤을 새기도 하고, 처치 끝나면 언제 다시 콜이 올지도 모르고

시간이 어중간해서 난방도 안들어 오는 사무실에서 담요 하나 덥고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합니다.  당직 전공의도 거의 날을 새다시피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영화나 TV드라마에서 선남 선녀들이 보여주는 멋진 화이트 칼러가 아니고

블루+화이트 칼러 직종이라고 한답니다.

 

오늘은 존엄사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느날 밤에 콜을 받았습니다.

제 앞으로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료의사가 환자를 전원한것입니다,

당직 전공의가 전화로 보고하는 환자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응급 조치를 부탁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지요,

환자는 16세 남학생이고, 악성 골육종이라는 말기 암환자였습니다.

항암 치료와 수술을 여러번 했지만 끝내는 두개골과 뇌에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두개골에도 골육종 암세포가 자라서 머리가 울뚝 불뚝 솟아서 밤송이 처럼 되어 있고,

뼈가 있는 부위에는  어디서나 종양이 만져질 정도였지만, 아직까지 의식은 또렷하고,

통증을 심하게 느껴서 안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일단 중환자실로 입원시키고 통증 완화시키는 치료를 시작했지요.

부모는 힘든 투병 생활에 많이 지치신 상태이고, 본인도 힘들어 하고,  

맘이 답답했습니다.

솔직히 이 상태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제 동료 의사가 저에게 보낸것도 그쪽에서도 방법이 없고 집이 가깝기 때문에

통증이라도 치료 해주라고 보내것입니다. ('완화의료'라고 합니다. 일종의 호스피스이지요) 

다음날 아침 부모님이 면담을 신청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치료를 중단하고 통증만 가라 앉으면 퇴원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환자의 상태는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잘 알고 있고, 해 볼 수 있는건 다 해봤기 때문에

미련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씀 하셔서 오히려 제가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치료를 해야 합니다.

일단 병원에 입원한 이상, 그리고 의식도 있고 본인의 의사를 뚜렷이 표시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집으로 퇴원시켜 드릴 수 없다고 거절했지요.

하지만 치료해도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하루 하루 상태는 나빠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의식도 오락 가락 하고, 통증도 조절이 안되고, 여러 가지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신 상태는

악화일로를 가고 있었지요.

이번에는 제가 부모님 면담을 청했습니다.

현상태를 잘 설명해드리고, 병자 성사나  종부 성사를 권했습니다.(전 천주교 신자입니다)

종부 성사나 병자 성사는 천주교에서 행하는 미사 의식의 하나로 

영혼을 구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기원은 아무도 모르지요, 이건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이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것은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 이후를 모르기에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한가 봅니다.

부모님은 신자는 아니셨지만 자식을 위해서 동의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어릴적부터 저를 봐오신 친한 신부님이 계십니다.

스페인에서 오셔서 오랜 사목 활동을 하신 모신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 환자에게 종부 성사와 기도를  해주시고,  부모님과 만나 위로를 드렸습니다.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온 우주와 바꿀 수 없는 귀중한것이고, 생명은  하나님만이  관장하시는 일이니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인간의 생명울 좌지 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게 기억납니다. 

환자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안좋아지고 종내에는 의식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심폐 소생술을 몇번 하고 나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완강하게 더 이상의 연명 치료를 반대하는것입니다.

치료를 반대 할뿐 아니라  집으로 퇴원 시키겠다고 합니다.

난감하데요. 하지만 퇴원을 시켜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양해를 구하고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 상태를 설명드리고, 연명 치료를 계속 해야 하는 내입장을 설명 드리고

부모님 말씀도 들어 보시라고 전화를 바꿔 드렸지요.

신부님께서 결론을 내려주셨습니다.

환자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의학적인 판단은 내가 내려야 하지만, 가망 없는 환자를 소생시키는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기적을

인간이 행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하셨습니다. 

 

요즘 존엄사가 문제가 되나 봅니다.

법원에서도 의미 없는 연명 치료는 중단해도 된다고 판결이 내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