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산하나 2008. 7. 8. 11:00

야사쿠라를 아십니까? ㅎㅎ

어디선 많이 들어 보던 소리 같지요?

'그때 그시절' 이라는 TV 프로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돌아 올 수 없는, 다같이 힘들게 살았지만

나라가 발전 하는 만큼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정신과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이 있고, 노력하던 80년대 초 이야깁니다.

당시는 5공이라는 폭압정치가 계속 되었지만 정치적인 혼란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사회도 안정 되어 가던 시기였지요.

대학가에는 분신 자살이라는 끔찍한 민주화 운동도 끊이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서민들은 먹고 사는 일에 바빴지요.

그무렵 이야기입니다.

 

제가 수련 받았던 병원은 지금은 창경궁으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동물원이 있는 창경원으로 불리웠던 곳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철이 되면  야간에 공개를 하는 행사를 

했는데, 그때는 밤에 특별히 놀만한 놀이 공간이 없어선지

발 디딜 틈이 없이 인파가 몰리곤 했습니다.

물론 일시에 사람이 많이 몰리니 사고도 많았지요

연례행사로 열리는 창경원 야간 공개를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 전공의들은

야사쿠라라 했습니다. 사실 밤 벚꽃놀이 이라는 낭만적인 이름과는 달리

병원에서 근무하는 우리는 야밤의 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일 끝나고 이쁜 간호사들과 놀러가면 되지 않느냐구요? ㅎㅎ

 

이때가 되면 병원은 비상대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의료진 손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의대 4학년 실습학생까지  

당직실에 대기를 시킵니다.

밤 10시경 창경원이 문을 닫고 경비원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 내 보내면서

순찰을 도는가 봅니다.

정획히 10시 10분 부터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술취한 사람들부터  들것에 실려 오기 시작하는거지요.

응급실이 시장 바닥처럼 변하는건 순식간,,

취객들  대충 정리 끝나고 밤이 깊어지면서 상황은 점차 심각해지기 시작합니다.

12시 넘어서 부터는 인사불성인 젊은 여자들이 들어옵니다.

대개는 경찰이 소지품을 들고 오는데 예외없이 편지 봉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경원 구석진 곳에 숨어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이 실려 오는거지요. 

당시에는 의약 분업이 안되어 수면제를 자유로이 구입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약국에서 파는 양이 한정 되어 있기에 여러 약국을 돌면서 구입을 했겠지요.

결론적으로 수면제 먹은 분들 여러 사람 힘들게 하고 거의 살아 나가십니다 ㅎㅎ

 

오늘 이야기는 이 무렵에 벌어진 스토커(?) 이야기입니다.

젊은 처자가 경찰차에 실려 오고, 같이 온 경찰은 소지품 검사하고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의료외적인 것은 경찰이 알아서 하므로 우리는 치료만 하는게 원칙이지요.  

문제는 제 동료가 유언장을 읽은 것부터 시작합니다.

(의사들은 사실 냉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고 판단하도록 배웁니다.

사적인 감정이 게재되거나 휘둘리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의사들은 가급적 가족들 진료는 다른 의사들에게 맡깁니다.)

경찰이 한번 읽어 보라고 건네준 유언장은 마치 한권의 소설처럼 잘 써 있었답니다. 

읽은 친구는 아직 젊기도 했지만 글 솜씨에 반하여 환자가 깨어나자 병실을 방문하여

죽을 용기를 가지면 못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위로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분이 친구에게 맘이 갔나 봅니다.

그 전 사연이야 어떻든 퇴원하고부터는 병원으로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퇴근 무렵에 병원 문앞에서 기다리고 안보이면 여기 저기 찾으러 다니고,

한창 바쁘게 일하고 공부해야할 전공의가 난감했지요.

병원측에서 이 사실을 알고 환자에게 전문의 상담도 주선해줬지만

막무가내라서 그 친구는 결국 인턴만 마치고 군대를 가버렸습니다.

안보이면 맘도 멀어지는지 종내에는 안보이더군요.

그 여자분, 젊은 한때 고생스러운 기억이 있겠지만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거

알게 되었기를 바라며, 지금쯤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