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II
1. 그녀는 음대 성악과 출신입니다.
대학 다닐 때 연합 서클의 한 멤버로, 후배로 만난 사이였지만
정말 열심히 활동하고 특기를 살려 교회 일과 봉사를 하느라고
항상 바쁘게 사는 부지런하고 참한 여학생이었지요.
졸업 후 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재직하다가 틀에 매인 생활이 싫다고
사퇴한 후 사설 음악 학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면서 1년에 두 달은
세계를 유람하면서 수많은 친구들과 요즘 말로 화려한 싱글로 살아
가는 당찬 여자였지요.
어느 날, 내가 장래 문제로 너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근무한는 병원으로 찾아 와서 자기 모교에 가자고 하더군요.
근무가 늦게 끝나 밤이 깊어진 대학 캠퍼스는 가을의 쓸쓸함이 배어 있었고,
가로등 불빛만 빛나는데,
캠퍼스 야외 무대로 올라가더니 나를 위해 단독 콘서트을 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 날 전 정말 행복했습니다.
성악과 출신답게 시원스럽게 노래 잘 하더군요.
그렇게 활달하던 그녀가 곧 유방암 수술을 받는다는 연락을 십여 년 만에
했습니다.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로..
자기는 맘에 걸릴 남편도 없고, 토끼 같은 자식도 없어 걱정이 없다나요,
다만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를 좋아할 남자 친구가 없을까 바 걱정이라고
웃데요.
맘이 많이 아팠습니다.
2. 항암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후배에게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동안의 경과도 궁금하고 어떻게 사는 지도 알고 싶었지요.
병원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하여 주치의에게도 부탁 드렸고,
2기 정도라는 수술 결과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한번은 만나 보는 게 맘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후배는 예상대로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흔쾌히 약속을 하였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이 빛나는 주일 오후에 만났습니다.
어디 가고 싶냐고 했더니 어디든 데려다 달라고 해서 제가 좋아 하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통통했던 몸매가 홀쭉해지고, 머리는 다 밀어서 모자를 쓴 모습을 보니
참 맘이 많이 아프더군요.
바닷가를 걷는데 체력이 너무 약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쾌활함은 여전하였습니다.
수술 전에 걱정하던 한 쪽 가슴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나 애인이 있냐고
했더니 가슴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여전히 많답니다. ㅎㅎ
오히려 날씬해져서 더 좋아한다고 서로 병원 길 기사를 자청한다고 한다나요.
오는 길에 물었습니다.
야밤의 나 홀로 콘서트 기억하냐고..
나에게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냐고 했더니 고랫적 이야기
한다고 웃데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잊었다가 이야기 하니 생각났답니다.
저녁에는 이태리 피자를 먹고 싶어해서 레드 와인 한잔과 담백한 이태리
핏자를 사주었습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즐거워야 되는데 맘이 아리더군요.. 목도 메이고..
내가 그랬듯이 나의 작은 배려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3.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거의 2년 만에 들어보는 후배의 목소리,,
예전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니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했더군요.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이후 치료가 잘 되어
정기 검진만 한다는 것을 동료에게 들었던 터라 무심히 흘려 듣다가
뼈에 이상이 생겨 검사 결과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안타까왔습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짐작하는지 낼이면 결과 나온다고 하면서 술 한잔하고 있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예전의 고운 모습만 기억 해달라는 의미인지 이제는 더 이상 연락이 안되더군요.
4.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클래식을 주로 감상 하는 모임에서 마스터를 맡고 있다고 하네요.
인터넷에서 CJ를 한다는 소개와 함께 매주 토요일 수준 있는 연주가의
카페 연주회에 초대한다는 카드를 받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왜 연락이 안되었냐고 하니
죽다 살았다고, 마치 남의 일처럼, 예전처럼 쾌할하게 대답하더군요.
그사이 치료 과정이 많이 힘들었을텐데 잘 이겨내고 지금은 암이
더 이상 전이는 안되고 정지된 상태여서 유지 요법만 하면서
여전히 왕성하게 사회 활동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주회에 가보니 진행 하느라 워낙 바빠서 인사만 건네고 말았는데
수준 높은 연주회도 연주회지만. 후배가 분주하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았습니다.
P.S.: 유방암.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암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조기 진단이 필수적이지만
최근 들어 치료법이 급격히 발달하여 5년 생존율이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좋아졌습니다.
자가 검진 하시고, 의심 나면 바로 진단받으시도록 하세요.
치료법뿐 아니라 진단 기법도 많이 발전하여 힘들지 않게
조기 발견이 가능합니다.
이시간에도 유방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울 위해 기도 드립니다.
희망을 잃지마시고, 제 후배처럼 매사에 긍적적이고, 활동적으로
생활 하시고,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주세요.
유방암은 잘 낫는 병입니다!!